조증


내가 요즘 실습을 하고 있는 기관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위치한 구의연세사회문화센터. 건대 스타시티 건물에서 백걸음 정도 떨어진 허름한 건물 2~5층에 위치한 정신과병원 부설 낮병원이다. 건대 앞 스타시티 안에는 애플 제품 판매처인 frisbee가 있다. 오늘 그 악의 구렁텅이와도 같은 공간에 다녀왔는데 각설하고, 아이폰 사고싶다. 혼란의 가운데에 들어서게 된 시점은 어제 오후였는데 갑자기 어째서 내가 이런 혼란에 빠지게 되었는지는 그 시작이 꼭 꼬인 실같아서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 아마 하나님이 2년동안 갸륵하게 뽐뿌를 참아온 날 위해 상을 주시려고 그랬나보지.

숱한 화제와 이슈를 뿌리며 우리나라에 상륙했을 때에도, 아이폰은 하늘의 물건이다. 하는 사용평을 들었을 때에도, 심지어 맨 눈으로 그 고고하고 귀한 자태를 조우했던 그 순간에마저 아무런 마음의 동요가 없었던 나인데. 지극히 평범하고 잔잔하게, 지루하게 흘러가는 일상에 조증의 전조증상이 끼어든다 싶을 때는. ⓐ
갑자기 돈을 벌었거나,
ⓑ 사랑에 빠졌거나, ⓒ 뽐뿌신의 농간에 놀아날 때. 말하자면, 지금 나는 ⓒ의 상태인거다. 쭈그려 앉아 키보드나 두드리고 있지만 이미 마음은 엄청난 역동을 견뎌내고 있다는 거.

이만 이천원을 이년 동안 노예가 영주에게 조공 바치 듯(그 돈이 KT 주머니로인지, 캘리포니아에 계신 그분 주머니로 들어가게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꼬박 납부해야 하는 상황이 잠재적 백수인 나에게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하면 그것도 거짓말이겠지만. 간밤, 세차례나 잠을 깨며 자각몽을 꾸고, 펜과 종이가 있는 상황이면 여지없이 이미 외워버린 i-slim 요금과 휴대폰 할부금액을 합산한 비용을 끼적이는 나를 발견했을 때에는 그리스도교 박해왕 사울이 낙마 후 심신미약상태에서 예수를 만나고 전도왕 바울이 되어버린 것 처럼, 그러한 일련의 깨달음에 발을 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달 이만 이천원이라는 돈은, 친구들과의 술자리 한번만 줄이면 만들어지는 하찮은 것. 결국, 아이폰은 다이어트에도 특효였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거시다!

어차피 내게 휴대폰이란 거추장스럽고 무거운 회중시계가 되어버린 지 오래. 디자인에 눈이 팔려 미쳐 인지하지 못했던 사실이지만, 아이폰이라는 전화기는 사실, 전화만 걸고 문자만 하는 단순한 휴대폰이 아니라, 인터넷도 할 수 있고 메일도 보낼 수 있고, 길도 찾아주고, 살도 빼주고, 밥도 먹여주는 스마트폰이다. 어차피 누구랑 미주알 고주알 연락하는 것에도 별 관심 없고, 그나마 연락할 사람도 하루가 다르게 사라져 가는 나에게 스마트폰이라는 것은 ――― 휴대폰의 수준을 이미 넘어선 것으로 보이는 아이폰의 위풍당당한 무게와 부피처럼 ――― 감당하기 힘들 만큼 벅차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기껏 돈 들여 사놓은 물건을 뻥뻥 놀리면서 기본요금에 포함되어 있을 KT의 전산관리 비용을 매달 지불하면서도 정작 그 전산망은 얼마 이용하질 못하기 때문에 내가 지불했던 휴대폰 값이나 매달 나오는 기본요금, 통화요금, 문자요금은 다른 사람들이 이용하는 수준에 비하면 턱 없이 효용가치가 떨어진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니까 결론은, 사서 가지고 놀 휴대폰이 지금 내게 필요하다는 거다. 이미 내 몸 안의 모든 신경계와 뽐뿌 유전자는 그것만이 내 휴대폰생활의 효용가치를 최대한으로 높여주는 일인거라고 항변한다.

내가 하는 소비가 결국 나를 만들어 내는 사회적 시스템에는 엄청난 반감을 가지지만,  어쩐지 애플에서 내놓는 물건을 보고 있자면 그런 반감이 조금은 사라진다. 그러니까, '봤지? 나 아이폰 쓰는 여자야.' 하는 마음이 아니라, 현실에서 쉽게 이루지 못하는 미래적 판타지를 실현해 주는 느낌...이라고 에둘러 써봐도 재수가 없네? ㅎㅎ 하여튼 인생 뭐 있나. 이쁘면 장땡이지. 여자랑 전자제품은 그저 이쁜게 미덕이다.

내일은 첫 프로그램 진행 날이다. 잡설은 그만 싸무리고 잠이나 자야지.


빌어먹을 너, 왜 태어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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